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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축하는 이념적 장으로서의 건축

기사승인 2018.01.31  22: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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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 건축에 주목하며, 그것이 건물 자체를 일종의 조각으로 다루거나 기념비적으로 양식화한 모더니즘 시기의 건축적 특징에서 보이는 미학적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발로서 미학적 대중주의를 담지한다고 주장했던 프레드릭 제임슨의 작업에서 우리는 건축의 정치적 가능성을 엿봤다. 즉 이때 건축은 그 외양적 측면에서조차 이념이 첨예하게 상연되는 매체로서 조명된다. 한편 공간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작업으로 널리 알려진 푸코의 경우 건축은 감시와 연관되어, 학교, 병원, 군대, 감옥 등의 내부 시설과 같이 시선에 따른 권력의 경로와 강도를 규정하는 수준에서까지 파악된다. 그리고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구축주의자들에게 건축은 질료의 배치 자체와 인간이 맺는 세밀한 단위에서부터 삶과 예술을 지양해낼 강력한 수단으로 정립된다. 이처럼 건축은, 단순히 특정한 질료의 조합에 그치지 않으며 인간의 생활 자체에 무의식적으로 개입하는- 어떤 측면에서 강력한 매체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진석, 󰡔러시아 구축주의와 사회혁명: 새로운 삶과 인간의 형성을 위한 건축적 실험󰡕, (러시아연구 26(2), 2016)은 건축으로부터 사회주의적 실천의 비전을 발견한 구축주의와 혁명의 관계를 논하는데, 이는 건축뿐 아니라 넓은 의미의 예술 일반에서 작업을 진행할 때에도 유용한 연구가 될 것이다.

붉은 쐐기로 하양을 매우 쳐라앗!
 
저자는 혁명을 저지하기 위한 공학적인 실천으로서의-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론을 언급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건축은 단지 미적 관조를 위한 고전적인 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행위를 특정한 방식으로 유도하여 결과적으로 그들의 인식에 개입하는 적극적인 실천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는 주택을 “살기 위한 기계(machine)”라 표현한 르 코르뷔지에의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이때 건축은 단순한 물리적 축조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욕망을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사물을 배치”(363)하는 함의를 갖는다. 르 코르뷔지에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건축은 건설의 문제 너머에 있는 예술이며 감정의 현상”이기에, “건설의 목적이 건물을 지탱하는 것이라면, 건축의 목적은 인간을 동요[감동]시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저자는 르 코르뷔지에에 이르러 건축이 전통적인 미적 조화(harmony)로서의 쾌감을 넘어 “세련됨이나 거s, 분방함이나 평온함, 냉담이나 격동을 분명하게 야기 시키는 감응”을 상대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유토피아적 기획으로서의 건축
 
이어 그는 이 지점에서 현대 건축의 전략이 대략 두 가지로 분화된다고 말하며,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1. 현대 건축에서 ‘건축’의 개념은 사물(신체)-기계 사이의 관계와 배치와 관련된 것으로서, 이는 세계를 기계들의 결합으로 간주하고 이 결합을 합리적으로 구축하는 것을 수반한다. 2. 이러한 (미적)관계의 결합은 감각, 그리고 욕망의 충족과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궁극적으로 물질과 관념의 통일을 추구한다.
 
허나 이런 측면에서 (당연히 도시계획을 비롯한) 건축은, 르 코르뷔지에가 일종의 항상적인 예방혁명 수단으로서 제시했던 맥락에서 벗어나 혁명을 개시하고 완수하는 (진정한) 매개로서 등장할 수도 있음이 주목되는데, 저자는 그 대표적 사례를 1920년대의 구축주의로 꼽고자 한다. 그는 구축주의와 혁명의 관계에 대한 설명에 앞서, 이와 관련하여 오언의 (‘ㅁ’자 모양의)사변형공동체(paralellogram), 푸리에의 ‘팔랑스테르(phalanstère)’, 장 고댕의 ‘파밀리스테르(familistère)’ 등을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이들이 사회혁명적 건축에 관심을 가졌던 배경은 1. 자본주의의 생산성 증대 경향에 맞춰 가파르게 증가한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적절한 시설(주택, 상하수도, 도로건설 등)을 갖춘 근대적 도시형태가 소구되었던 점, 2. 급격한 공업화가 야기한 ‘사회’문제로서 대두된 노동계급의 주거환경과 작업장 조건이 쟁점화 되었던 점, 3. 이들을 경계하고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부르주아지의 공간에 대한 이해가 첨예해졌다는 점에서 연원한다. 이 중 결정적으로, 푸코적 의미에서 “인구의 신체와 정신을 동시에 포획하여 지배 및 통제하기 위한 국가와 자본의 전략”(366)으로 제시된 건축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전유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노동자들이 자립적인 삶의 기반을 찾을 수 있는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모색”(367)하는 기획의 일환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예컨대 오언은 자신이 ‘기계’라 표현한 사변형공동체를 통해 1000명 정도를 수용하는 주거공동체를 구상하였고, 이는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일상과 노동, 여가를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된 최초의 건축적 계획이었다.”(Ibid) 저자에 따르면 그의 구상은 실로 어떤 기계(machine)라 할법했는데, 까닭인즉 여기서 건축의 목적은 (마치 의식하지 않고도 보행하는 ‘걷는 기계’처럼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인간과 그 삶을 변형시키는 것이었고,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혁명에 준하는 무게를 갖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덧붙여 저자는 오언의 시도가 재정상의 이유로 실패하였으나, 사회구조적 문제를 건축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근대 도시계획의 선구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마찬가지로 생시몽과 더불어 초기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원형이 되는 푸리에의 경우에도 비슷한 비전이 있었는데, 그의 모델 ‘팔랑스테르’는 일종의 집합주택으로서 “거주자들이 외따로 분리된 채 생활하지 않도록 세심히 안배되어 있다는”(Ibid) 것이 그 특징이다. 예를 들면 각 가구를 이어주는 연결통로는 항상적으로 난방과 통풍을 원활히 하여 사람들이 서로 편히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연회장, 집회소, 건물 내부의 뜰은 팔랑스테르의 어떤 곳에서든 접근하기 쉽게 설계되었다. 덧붙여 “주거용 건축물 인근에는 학교와 강당, 각종 소규모 편의시설을 마련해 생활을 통해 사람들의 교우를 증진시키려 했으며, 도보로 작업장을 왕래할 수 있게 만들어 일과 일상을 결합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한 마디로, 생활과 여가, 노동이 동일한 권역에서 이루어지게 설계함으로써 삶을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려는 계획이 팔랑스테르였다”(368)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푸리에 사후 그의 추종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1840-50년 사이 미국에서 41개소 이상의 집단주택을 만들며 시연되기에 이른다. 한편 실업가(實業家)였던 장 고댕의 파밀리스테르는 푸리에의 기획을 유럽에서 실험한 것으로서, 자신의 주철공장 근처에 노동자들이 거주 할 수 있는 집합주택을 지어 시행하였다. 고댕은 그와 함께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을 만들고 파밀리스테르의 운영권을 넘길 정도로 헌신적이었으나, 좌파들에게는 사소하거나 (시설의 측면에서든, 가족단위를 긍정하는 측면에서든) 부르주아적이라는 이유로 비판받고, 우파들에게는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외면 받았다. 저자는 이 모델들이 널리 퍼지지 못했던 까닭을 이렇게 정리한다. 즉 1. 여기서 건축은 단순한 주택 모델을 넘어 “계급투쟁의 상징적 전장”이었고, 2. 뜻있는 부호에 의해 대규모의 자금이 투입되기 전까지 탁상공론에 머물 공산이 컸으며, 3. 사회주의자들조차 주거공간의 배치와 배열 자체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잠재력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순한 의식의 계몽이 아니라, 계몽이 침투할 수 없는 부분인 무의식적인 행위 유도의 방식들을 재고안하는 일이야말로 혁명에 필수적인 덕목이라는 점에서 건축을 높이 평가한다.
 
 
구축주의와 혁명
 
이제 저자는 정치와 예술의 변증법적 관계를 언급하며, 이 둘 모두가 기계적 인과로 조직된 과거의 시간을 깨뜨리면서 단독적인 새로움으로 출현할 수도, 혹은 이미 주어진 시간성에 편입하면서 단순한 반복에 머무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서 전자는 랑시에르적 의미에서의 ‘정치’(소여의 감각[감성]적인 것의 분할)와 조응하는 것으로, 반면 후자는 ‘치안’(주어진 체계를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유지하고 보수하려는 관성)과 조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연장에서 그는 벤야민을 빌어 기존의 서사를 파괴하는 새로움과 충격의 시간을 ‘예술의 정치화’로, 이미 존재하는 서사 내부에서 고착되는 시간을 ‘정치의 예술화’로 까지 맥락화 한다.
 
이제 논의는 양자가 서로 동등한 ‘전위’로서 긴밀히 공명했던 사례로서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아방가르드(특정하게는 구축주의)의 관계로 옮겨간다. 그는 구축주의를 건축운동이 아니라 아방가르드의 전체 범주 속에서 규정해야함을 강조하며,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즉 구축주의는 형상(form)을 특권화 하고 질료(material)를 부차화 시킨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지배적이었던 서구 미학의 패러다임을 뒤집어 질료, 즉 순수한 물질성과 실체성에 대한 관심으로 방점을 옮겨온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초기 러시아 아방가르드에서부터 내려오는 경향으로서, “규정된 미적 범주를 준수하는 데서 성립”(375)되는 예술이 아니라, “변화하는 질료의 흐름, 그것의 변환적 힘 자체를 포착”하는 예술을 원했던 타틀린, 모든 형상을 거부하며 가장 단일하고 원초적인 물성만이 남는 상태의 “지고한 형상들(supremus)”-“절대적인 것”에 주목한 말레비치 등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일종의 무대상적 표현으로서 여전히 재현 대상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미적 관습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을 제기하는데, 이는 한편으로 당시 정치적으로 격변하던 러시아의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어 검토되는 것은 구축주의의 역사이다. 혁명 이후 격변하는 정세적 분위기와 조응하여, “1920년 10월에 니콜라이 라도프스키와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이반 졸토프스키 등이 주축이 된 고등예술기술학교, 즉 ‘브후테마스(Vysshie khudozhestvenno-tekhnichekie masterskie)’가 설립”(378)되었고, 이는 건축, 디자인, 공예 등에서 관심을 가진 여러 예술가들을 결집시키며 구축주의 운동의 모태가 된다. 같은 해 모스크바에 설립된 문화예술대학 ‘인후크(Institute khudozhestvennojkul’tury)’는 앞서 얘기한 브후테마스의 좌파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으며, 여기 초기에 영향력을 행사한 이는 칸딘스키였다. 허나 학교의 운영 및 예술적 이념과 관련하여 칸딘스키가 제안한 테제는 정신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어 당시 좌파 예술가들에게 호응 받지 못했기에, 여기서 다시금 ‘실험실 예술’이라는 테제가 주창되고 이에 맞서 경합하는 ‘생산예술’의 흐름 또한 나타난다. 1921년에 이르러 인후크 내외부에서 ‘구축(konstruktsija)’과 ‘구성(kompozitsija)’의 개념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은 양자를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분화 시키는데, 이 논쟁 속에서 “구성은 예술가의 자의적 요소에 의지하며 개별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목적 없는 제작에 속하는 반면, 구축은 목적을 갖고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는 잉여 없는 제작으로 규정되었다.”(379) 즉, “구성은 요소들 사이의 장식성에 의존함으로써 과잉과 낭비를 드러내는 부르주아적 향락성을 보이는 데 비해, 구축은 동기화된 기호의 집합으로 정의됨으로써 제작의 구조적 합리성을 반영하는 행위에 연결”된 것이다. 이에 따라 “로드첸코와 바르바라 스테파노바, 알렉세이 간 등이 결성한 구축주의 노동자그룹이 큰 힘을 받게 되었다. 그들은 구성이 기성의 예술이론에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비판했고 기술공학에 기반한 질료의 조직과 구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들을 ‘생산주의 예술가’ 또는 ‘생산예술파’로 부르면서, 그들은 예술을 삶과 밀접히 결합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주장했고, 예술은 결국 산업과 동일한 뿌리를 갖는 노동이라 간주했다.‘(Ibid)’. 이 논쟁 속에서 다듬어진 구축주의는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써 활약하게 된다. 이들은 부르주아적 시민사회에 이르러 자족적인 것으로 등장한 예술을 일종의 적폐라 간주하고, 삶과 예술을 강력하게 통합하고자했던 아방가르드의 한 극단에 있다. 반면 합리주의적 건축가로서 논쟁 당시 ‘구성’을 지지했던 라도프스키 등을 비롯한 ‘실험실 예술파’는 1923년 인후크를 해체하고 ‘아스노바(ASNOVA, Assotsiatsija novykh arkhitektorov)’(신건축가 동맹)를 결성하였는데, 이들은 질료 자체에 대한 관심과 생활세계로의 천착보다 건축의 기하학적 표현, 심리적 효과 등에 집중하였다. 반면 ‘구축’을 지지하던 이들은 브후테마스의 교수였던 알렉산드르 베스닌을 중심으로 집결하여 여러 건축공모전에서 활약하고, 1925년엔 ‘오사(OSA, Ob’‘edinenie sovremennykh arkhitektorov)’(현대건축가 동맹)를 설립하여 활동한다. 당시 오사는 사회주의적 주거양식과 건설기획안 등을 제안하고, 1927년 모스크바 현대건축박람회를 주도할 정도로 정점에 도달해 있었지만, 1928년 총회를 마지막으로 해산하며 사그라드는데, 저자는 이를 스탈린주의적 실용주의가 공고화된 사정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중론이라 주장한다.
 
 
구축주의의 쟁점들:
저자가 말하지 않은 것
 
이어 그는 건축이야말로 주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행위 하게 하고, 나아가 주체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매체임을 이해할 때 구축주의의 이상과 실천을 이해할 수 있음을 역설하며 논의를 마무리 한다. 위의 설명들에서 드러나듯, 본고에서 저자는 급진적 미학이 추구해야할 기획의 단초를 구축주의적 이념에서 설득력 있게 일별하고 있지만, 몇몇 부분은 비판적으로 접근할 여지가 있다.
 
우선 그 첫 번째 측면은 다음과 같다. 저자의 논리 속에서 스탈린주의는 자연스레 소련사회가 마주한 '치안'으로 설정되고, 구축주의는 그 반대항인 '정치'에 연결되면서, 혁명적인 미적 단절을 성취했던 구축주의가 1920년대 말부터 수그러진 경향은 '정치에 대한 치안의 승리'로 위치지어 진다는 것이다. 허나 이는 다소 낭만적이라는 인상을 주는데, 까닭인즉 굳이 보리스 그로이스 식의 역전(여러 정황상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이념적 완성 자체였다는)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스탈린주의에 모든 죄악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러시아 혁명의 의의를 손쉽게 (혹은 다소 게으르게) 지키고자 하는 것 이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착한 레닌 대 나쁜 스탈린, 훌륭한 네프(신경제정책) 대 조야한 5개년 계획, 급진적인 구축주의 대 반동적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이원론적 도식은 해명해야할 문제를 (윤리적)가치판단의 범주로 소급하여 외려 러시아 혁명과 그 유산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길 주저하는 경향이 있다.
 
두 번째 측면 역시 마찬가지로 도식적인 정의에 관련된 것으로, 저자의 설명에서 구축주의의 이상은 이들이 인간을 상호 교류적 행위로 인도하는 건축적 배열을 창출하는 것을, 즉 집단성과 공동성을 창출하는 것을 곧바로 공산주의적 예술의 지향으로 간주했음을 암시하는데, 이는 공산주의를 집단성에, 자본주의를 개인성에 너무나 매끈하게 대입함으로써 공산주의 자체의 의미를 축소시킨다는 인상을 준다. 설령 구축주의 자체에 그러한 도식적인 경향이 있었다 해도, 그러한 경향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해명되어야할 문제로 남기에, 그것을 곧바로 승인하기보다는 검토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즉, 한편으로 세계와 마주하여 그 모순을 사유하는 의식적 계기, 분열을 만들어내는 분파주의적 계기 또한 공산주의의 이념과 호환되는 것임을 감안할 때, 구축주의가 ‘개인’의 측면을 어떻게 고려하고 그들의 실천 대상으로 삼았을지, 그러지 못했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지 등은 비판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요컨대 구축주의는 삶의 집단적 형식들만큼이나 비판적 개인을 위한 설계 및 행위 유도의 도관을 염두에 두었는가? 그들이 애초에 인간은 근본적인 수준에서 독립된 개체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축적 쟁점이 되는 것은 공동성의 창출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면, 공산주의와 ‘개인’의 관계는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마지막으로, 이들보다 근원적인 수준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무의식의 범주에서 작동할 자연스런 의례를 유도하고 여러 정념들을 창출하는 생산적인 배열을 시도하는 행위로서 구축주의의 건축적 비전이, 과연 의식적인 공간배치행위를 통해 '무의식'의 영역에 성공적으로 틈입할 수 있었는지의 여부다. 이는 한편으로 예술의 존재론적 가능성인 동시에 그 한계를 규정하는 것과 관련된 쟁점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고정된 지시대상을 가지지 않으며 단일한 기표에 다수의 기의를 내재하는 (건축을 포함한) 예술작품은, 그 자신을 통해 표현된 것을 초과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포스트구조주의적 어법으로 말하자면, 수신자의 의도는 애초에 텍스트가 수신자의 손에서 벗어날 때부터 지워지고, 텍스트는 해석학을 경유하며 무한히 다변화되고 열리게 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언어를 초과하는 예술 자체의 존재론인 셈이다. 이런 실현과 작동의 여부를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데, 이유인즉 예술가의 의도만을 평가하고 작품 자체가 이룩한 수준과 그 효과를 따지지 않는 것은 외려 예술이 특정한 해석학에 의해 매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그 의미를 무한히 지연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예술을 불가지론적 대상으로 규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구축주의의 비전이 현실 속에서 유발한 효과와 작용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의도는 충분히 실현되었을까, 혹은 인간의 의례와 정념 등을 규정하는 무의식적 영역에 개입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의 근원적 제약으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까. 이는 곱씹어 볼만한 쟁점일 것이다.
 
공간의 조직과 배치라는 화두가 사회주의적 이념을 실현하는 데에 있어 핵심적인 쟁점인 때가 있었다는 사실은, 파놉티콘에 대한 푸코식 규정이 있기 훨씬 이전부터 제도, 장치, 공간과 주체의 관계가 적극적으로 탐구되어왔고, 공간 자체가 상이한 이념들의 각축장이 되어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속에서 아직 해명되지 않은 여러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구축주의적 실험을 긍정적으로 주목해 볼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오늘날 점차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로 무장한 채 다변화되면서 동시에 총체화되고 균일해지는 여러 쇼핑몰들과, 테마파크, 터미널, 공항, 주상복합단지 등에 대한 좌파적 개입은 어떻게 가능할지를 점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읽으면 좋은 논문

정은영, 󰡔구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사연구34), 2013

배수희, 󰡔미술의 기능변환: 러시아 구축주의 연구󰡕, (미술사학보27), 2006

정강산 wjdrkdtks9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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